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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교훈 찾기] '우리가 희망이다' 공연 준비에서 무산까지

StarCatcher 2018. 9. 6. 21:00

2018년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동안의 과정.

장애인과 비장애인 문화 교류와 관련된 공연을 준비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경험입니다.

그 과정을 복기하며 배울 점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공연 개요

공연 제목: 우리가 희망이다

공연 취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문화 교류, 화합

공연 일정: 10월 27일 토요일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 홀 혹은 호원아트홀

공연 내용: '행복한 글쓰기' 강좌 수강생의 창작시 낭송과 아리아클래식기타앙상블의 연주

공연 준비 인원: 하우스매니저, 시설팀, 장비팀, 홍보팀, 영상팀 등 총 10명 이상

공연 규모: 예산 500만원, 관객 300명

주최 및 후원: 서울시도서관, 한국점자도서관



발단

한국점자도서관 '행복한 글쓰기' 수강생들의 창작 시 낭송과 아리아 클래식기타앙상블의 연주를 함께 하는 공연.


저는 구 자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클래식 기타 강좌를 작년부터 듣고 있습니다. 그 수업에서 만난 이남영 선생님이 위와 같은 공연을 준비 중이셨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의 제의로 공연 준비에 합류했습니다.

한편, 이 선생님의 친한 동기인 강정숙 선생님께서는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장애인,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행복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계셨는데 그 강좌는 시, 산문, 운문 등을 창작하는 수업으로 지금까지 7년 간 강의를 하셨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그 수강생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대중 앞에서 발표하거나 공개적으로 선보일 기회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최근에야 몇몇 수강생의 작품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시기는 했지만 작품 전시회나 낭송회를 연 적은 없던 것을 안타까워 하셨던 강 선생님은 직접 발벗고 나서서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하셨어요. 친한 친구이신 이 선생님 역시 강 선생님의 계획을 듣고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함께 착수하셨습니다. 이 선생님 기타 강좌의 수강생이었던 저 역시 공연 얘기를 듣고 흥미가 돋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행복한 글쓰기' 수업에 참관자이자 시 낭송 반주자로 참여하여 수강생들과 함께 한 게 2번 있는데 강 선생님께서 그 수업에 애착을 가지시고 왜 그렇게 수업 분위기가 좋다고 말씀하시는지 두눈으로 직접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그 수업에는 시각장애인 두 분, 청각장애인 한 분, 비장애인 두 분이 나오십니다. 사실 시각장애인과 얘기를 나눠보거나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은 그 때가 제 인생에서 처음이었는데, 편견이 많이 깨졌다고 할까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시고 생각보다 저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수강생들끼리 서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하나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 김창민 선생님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 그 분은 최근에 작품집을 하나 내셨습니다. 초판이 다 팔려서 몇 남지 않은 책을 저에게 선물하시면서 여든이 넘으신 분께서 저처럼 어린 사람에게 연신 '백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감동이면서 존경스러웠습니다. 선생님 책에는 시와 산문, 단편 소설이 다채롭게 실려있는데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흡입력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책 제목은 '나에게 쓰는 편지', 출판사 BF북스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길..

언제 한 번은 야외수업을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10월에 있을 공연을 위한 사진전과 공연 영상에 들어갈 모습들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맨으로서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백일장과 야유회가 적당히 섞인 그런 모임이었어요. 열심히 찍던 와중 수강생 분들께서 '이 수업에 오는 모든 이는 무조건 시 하나 써내고 가야한다'고 장난스럽게 참여를 권하셔서 저도 함께 '앎'이라는 주제로 시를 하나 써낸 즐거운 기억도 있네요.

이렇게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7년 간 성장하며 쌓인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질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게 저도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장애인의 사회적 인식과 BF(barrier free; 배리어 프리;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공연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전개

지난 4, 5월에 선생님들과 함게 공연 컨셉과 프로그램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우리가 희망이다'라는 제목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난 것, 저같은 실력 없는 일반인이 아마추어로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그 자체가 희망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나온 제목입니다.

누가 어떤 시를 낭송할 것인지, 누가 어떤 음악을 연주할 건지, 배경으로 들어갈 영상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건지, 프로연주자는 누굴 섭외할 것인지 등 컨셉 회의를 좋아하는지라 제일 설레고 떨렸던 순간입니다.

저는 또한 영상팀으로서 시 낭송 때 스크린에 띄울 시 자막 영상 제작, 연주 때 들어갈 영상 제작 등을 맡았고, 동시에 연주자로서 반주와 합주를 맡았습니다.

또 우리는 문화예술을 주로 하는 비영리단체를 등록할 예정이었습니다. 공연 현수막 제작하기 전에 주관에 꼭 우리 단체 이름을 넣자고 다짐하며 그 일정에 맞춰 단체 등록도 미리 마치자고 얘기했습니다. 우리 단체의 이름은 '마음'이며 후원은 두 선생님의 동기 모임인 '동그라미'였습니다.

지난 6월, 좋은 취지 덕인지 우리의 인맥을 동원해 하우스매니저, 시설팀, 장비팀, 홍보팀을 꾸렸고 10명 가량 되는 인원이 공연 준비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굵직한 주제의 결정과 진행 일정, 역할 분담을 지시하시고 우리 스탭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주간 스탭 회의를 진행하고 현장 답사를 다녀오는 등 팀웍을 다지고 일정을 진행했습니다.

7월 입니다. 공연 규모는 순식간에 불어났습니다. 도중에 서울시도서관과 한국점자도서관의 지원금이 붙어서 저희도 더 큰 공연장에서 진행하고자 계획을 조금씩 변경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반가운 소식에 우리도 진행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위기

한국점자도서관과 체결식을 맺고 지원금을 받고자 했으나 프로그램 내용을 주최 측과 상의도 없이 우리끼리 독자적으로 구성해서인지 트러블 아닌 트러블이 생겨 체결식과 지원금 약속 역시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공연을 열고자 하는 마음만 컸지, 구체적인 예산과 지원 일정을 일찍이 약속하고 계획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고 작은 한 마디에 들떠서 여태까지 공연을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준비해 오던 것이 안타까워 소규모의 공연이라도 열자는 마음으로 한 보육원에서 작은 공연을 열고자 했으나 원하는 일정에 원하는 형식의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이 자꾸 막히자 우리는 모두 지쳐갔습니다.


절정

우리는 공연을 무산시키기로 했습니다. 동기 모임 '동그라미'에서 후원을 받아 공연을 열 수도 있지만 지금 기관의 주최가 빠진 상태에서 그저 우리끼리 하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모두가 안타까워 했지만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결론

큰 행사를 준비하려면 우선 공식적인 단체로서 움직여야 하고, 가장 중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최소 1년의 준비 기간을 두어 다른 기관과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함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취지만 가지고는 모든 일이 풀리지 않음을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한마디로 순서가 잘못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각자의 역량을 키워 추후에 비영리단체를 하나 만들 예정입니다. 몇 년, 아니 1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같은 뜻을 품고 각자의 재능을 펼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보잘것없는 저를 믿고 여러가지 일을 맡기고 함께 일한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습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공연이 무산됨을 얘기하고자 모인 날, 강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영 씨처럼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자신의 끼와 재능을 훨훨 펼칠 친구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그 능력을 발휘했으면 좋았을텐데 자기가 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그 말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ㅠㅠ 반대로 저는 그런 얘기를 해주신 것도 감사하다고, 저처럼 젊은 친구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는데 진짜 울컥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도 저에게 용기 주시고 잘 할거라고 믿어주신 그 믿음이 저에게 있어선 큰 자산입니다. 

그러면서 강 선생님께서 지금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고생, 사회생활 겪어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취업을 준비하는 저에게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강 선생님이 예전에 말씀하시기로, 7년 간 '행복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김창민 선생님 등 여러 나이 드신 분께서 당시 삶의 고민(자녀 진학 등)을 들어주시고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내리사랑을 지금 이렇게 흐르는 것 같아 감동이었고 사회가 이런 식으로 순작용을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분법적으로 갈라져있습니다. 먼저 남북으로 갈리고, 남한 내에서도 진보가 보수가 서로를 물어뜯고, 남녀가 싸우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갈라선 사회. 사실 생각해 보면 저같은 젊은이가 어르신들의 고견을 들을 일이 거의 없고, 그런 자리도 없고, 만약 그런 자리가 있다 해도 잘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일을 진행해 보고 얘기를 나눠보니 서로의 마음이 열려만 있다면 얼마든지 각자의 의견보다 더 나은 의견,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회의 및 답사, 야외수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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