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넘실거리는 바다
창세기 3장과 로마서 5장 <우리를 향한 그 분의 계획> 본문
창세기 3장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더니
느낌이 묘하다.
전에는 그저 하나의 신화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것이
오늘은 현실적이면서도 슬픈 이야기로 느껴졌다.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나셨을까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따먹은 사실을 알게 되셨을 때 말이다.
물론 예견은 하셨겠지만 말이다.
선악과는 자유의 상징이다.
세상 사람들이나 일부 교인들은
왜 하나님은 선악과라는 것을 만드셔서 인간을 스스로 타락하게끔 만드셨냐고 묻는다.
만약 당신이 신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에겐 창조의 능력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 피조물을 만들어 냈다.
이 피조물들이 마치 로봇처럼, 기계에 입력된대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의 말에 복종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고 순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생각해 낸 상상일 뿐이고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를 낮은 차원에서 보고 얘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 넓디 넓은 우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했는데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어떻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이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입으로
그 분을 찬양하길 원하셨다.
그 분을 인지하고 경외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그 분을 거부할 자유까지 주신 것이다.
선악과는 자유이자 사랑이다.
그저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창조주의 말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은 생각(혹은 말) 한번이면 우리를 흩으실 수도, 단번에 창조해내실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를 내버리지 않으셨다.
이 놈~ 네 놈들이 감히 내 말을 거역해~ 저 놈들의 목을 당장 쳐라~!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할 기회를 허락하셨다.
그것은 바로 직접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해결해주시는 것이었다.
왜냐면 하나님은 너무나도 선하시고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하고는 싶으신데 죄 때문에 그 길이 가로막혀버렸기에 그 죄를 해결해야만 했다.
왜 하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냐고?
다른 대속 방법이 없느냐고?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
고로 영생할 수 있었던 우리 인간은 죽음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롬6:23)
인간의 죄 역시'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대신 죽어주신 것이다.
너무 황당할 정도로 일방적인 사랑같지 않은가
마치 짠한 러브스토리같다..휴
지옥도 사실 사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들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만 천국가는거고 그게 아니면 지옥인거냐,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었더냐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사탄은 원래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지상에 버린 애들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잡아 지옥에 가둬버리는 역사가 있다.
사탄은 결국 자기네들이 지옥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꾀를 썼다.
사탄 왈,
창조주여, 당신의 손으로 빚은 저 피조물, 인간들을 보십시오.
저 놈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저 놈들도 심판해서 지옥불에 던져져야 공평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공평의 하나님이셨던 분은 그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제 잘난 맛에 살면 우리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끔찍이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사탄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와 명예에 모든 것을 다 걸도록, 혹은 다른 우상을 숭배토록 우리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다.
전도사님께서 다음과 비슷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길거리에 있는 벤치를 봐라.
우리에겐 익숙하면서도 관심도 없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서울시의 귀중한 재산이다.
남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허름한 내 가죽필통.
땅에 떨어져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걸 잃어버린다면 난 꽤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존재인거다.
우리가 하나님 소유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지하고 교감해야 우리는 특별해진다.
우리가 아무리 특별해지기 위해 발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창3:21을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신다는 말이 있다.
가죽옷을 제작하기 위해선 동물의 피흘림, 즉 희생이 필요하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마서 5장으로 넘어가보자.
18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모든 후손은 다 죄인이 되었다.
어찌보면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감안하시고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여,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 모든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경륜 ㅠㅠ
성경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교리와 그분의 계획에 흠이 없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반박할래도 반박할 수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겸손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왔으면 좋겠다.
+이건 논외의 얘기지만,
평소보다 다르게 읽혔던 부분 중 하나가 8절이었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담과 하와가 느꼈다는 부분말이다.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그런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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